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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로퍼의 바탕이었던 미쓰비시 파제로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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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맨

2023-03-20 17:00

현대 갤로퍼의 바탕이었던 미쓰비시 파제로의 몰락


신형 싼타페의 디자인이 각진 형태로 나온다고 한다. 곡선이 가미된 싼타페의 정체성 대신 현대 브랜드로 처음 등장했던 SUV 갤로퍼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현대정공에서 생산하고 현대자동차가 1991년부터 국내에서 판매됐었던 갤로퍼(Galloper)의 오리지널 모델은 미쓰비시의 SUV 파제로(Pajero)이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파제로는 각진 차체 디자인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갤로퍼의 원형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파제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파제로는 양산형 차량으로 처음 나온 것이 1982년형으로 3도어 차체를 가진 모델이 등장했는데, 미쓰비시가 파제로의 원형이 되는 모델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73년의 동경 모터쇼에서라고 한다. 미쓰비시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지프(Jeep) 메이커였던 윌리스(Willeys)와 협상 끝에 윌리스의 민간형 지프 모델 CJ3A를 생산하게 된다.





이 차량은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일본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였을 뿐 아니라, 미쓰비시가 독자적인 SUV 모델 파제로를 개발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 모델이기도 하다. 결국 미쓰비시의 SUV의 계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Jeep과 혈연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첫 번째 프로토타입이 1973년에 나왔고, 두 번째 프로토타입 파제로 II가 1978년에 나오고, 그 뒤로 양산형 모델이 개발된 것이 바로 1982년의 3도어 모델이라고 한다. 그리고 1983년에 축간 거리를 늘리고 5도어 차체를 가진 롱 바디 모델이 나오게 된다.





파제로(Pajero)라는 이름은 스페인어인데, 남부 아르헨티나의 평원에 서식하는 맹수를 의미하는 레오파드(Leopard)의 스페인어 식 표기 ‘Leopardus pajeros’ 에서 따 온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판매 지역에 따라 스페인과 인도, 그리고 브라질 이외의 미주대륙에서는 파제로(Pajero)라는 이름 대신 몬테로(Montero, 영어로 mountain hunter를 뜻한다고 함), 그리고 영국에서는 쇼군(Shogun, 일본의 무사) 등의 이름이 쓰이기도 했다. 또한 1980년대 후반에는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의 제휴 등으로 닷지 브랜드에서 레이더(Raider)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판매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이후에 미국에서 파제로는 더 이상 판매되고 있지는 않다. 주목되는 점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쓰비시의 차량 판매가 특히 미국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1990년대는 미쓰비시가 크라이슬러와 제휴하면서 미쓰비시는 물론이고, 닷지(Dodge)나 이글(Eagle) 등 크라이슬러 산하의 브랜드로 판매되는 미쓰비시 차량들의 물량도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에 이르는 시기가 자동차 메이커로써 미쓰비시의 전성기였던 걸로 보인다. 실제로 이 시기에 파제로는 파리-다카르 랠리에서 막강한 성능으로 상위권을 휩쓸다시피 했다.





파리-다카르 랠리는 일명 ‘죽음의 랠리’ 라고도 불리며 매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를 출발해서 아프리카의 다카르에 이르는 무려 9천여km의 거리를 한달 가까이 달리는 전 세계적인 경주대회였다. 최근에는 환경단체의 반발과 치안 등의 이유로 이름만 다카르 랠리일 뿐,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중남미에서 열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시기 1980년대에 파제로는 1세대 모델로 대회에 처음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걸 바탕으로 1989년과 1990년 1년 동안 파제로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30만대가 판매되기도 한다.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2세대 모델이 1991년에 나오는데, 전체적인 모습은 1세대 모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1997년에는 앞 뒤 펜더에 블리스터를 넣은 디자인의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 나오는데, 전체적인 디자인은 거의 동일하면서, 휠 아치 주변의 형태만 달라진 것이었다. 이 시기에는 2세대 파제로의 3도어 모델에 범퍼와 와이드 펜더 등을 부착해서 ‘파제로 에볼루션(Pajero Evolution)’이라는 모델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 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1999년에는 국내에서도 ‘파제로 에볼루션’과 유사한 이름과 디자인을 가진 ‘갤로퍼 이노베이션(Galloper Innovation)’ 이라는 모델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 나온 모델은 갤로퍼에 부분적인 변경을 했던 갤로퍼 II모델에 와이드 펜더와 범퍼 등을 덧댄 것이기는 했지만, ‘파제로 에볼루션’과 비슷한 이미지로 나왔던 것이다.





1999년에 일본에서는 3세대 파제로 모델이 나오지만, 필리핀 등의 동남아 지역에는 2003년부터 출시되었다고 한다. 3세대 파제로는 차체 구조가 이전의 프레임 방식에서 승용차와 같이 일체구조식 모노코크(Monocoque) 구조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 전까지 사다리꼴 형태에 가까웠던 휠 아치의 형태도 둥글게 바뀌면서 보다 부드러운 도시용 차량의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로 인해서 1세대와 2세대 파제로가 가지고 있던 전천후 차량으로서의 이미지는 희석되고 만다. 3세대 모델은 2006년까지 생산된다.





파제로의 4세대 모델은 2007년 형으로 발표돼 2021년까지 그다지 존재감 없이 팔리다가 단종됐다. 무려 14년동안 전반적으로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디자인에서 혁신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했고, 경쟁 차량의 성능과 디자인이 크게 높아진 이유도 있지만, 아마도 파리-다카르 랠리의 쇠퇴와 관련이 클 것지 모른다. 1세대 파제로가 파리-다카르 랠리를 통해 급격하게 성장을 했지만, 그 경기대회가 비판 받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파제로 역시 관심 밖으로 밀려난 건지도 모른다.


파제로의 1980년대의 전성기와 2021년의 단종은 마치 일본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과 유사하게 보이기도 한다. 일본차의 디자인은 1980년대와 1990년대가 전성기였지만, 지금은 그 시기만큼의 창의성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역사 속에는 영원한 강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한 약자 또한 존재하지 않듯이, 일본 차의 최근의 모습은 어쩌면 앞으로의 일본의 모습을 예견할 수 있게 해주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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