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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PV5, 치밀한 진화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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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맨

2025-03-26 15:25

기아 PV5, 치밀한 진화의 결과물



PV5가 공개되었다. EV4 해치백과 EV2 컨셉트 모델 등과 함께 발표된 PV5는 그 자체로도, 그리고 함께 발표된 모델들과 함께로도 중요한 기술적, 전략적 포석으로 판단된다.

일단 PV5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PV5는 지난 2024 부산 모빌리티 쇼에서 발표된 컨셉트 모델 단계에서는 PBV의 생태계가 만드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양산형 PV5는 ‘이것이 가능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를 제시하였다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PV5가 PBV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첫번째는 e-GMP.S 플랫폼이다. 지금까지 eS로 커뮤니케이션 되었던 PBV용 차세대 플랫폼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e-GMP.S로 붙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GV90에 최초로 적용될 승용차용 차세대 플랫폼인 eM의 이름도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e-GMP.S라는 이름은 아주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시장 경쟁력은 e-GMP 플랫폼 출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e-GMP라는 브랜드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차세대 플랫폼이 e-GMP의 이름을 계승, 확장하는 것은 아주 논리적인 접근법이다.



기술적으로도 e-GMP.S 플랫폼은 기존 e-GMP를 바탕으로 하여 PBV의 특성을 고려하여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 역시 축적된 노하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명한 선택이다. 예를 들어 모터, 인버터, 감속기를 일체화한 3-in-1 설계, 모터의 헤어핀 권선, 실리콘 카바이드(SiC) 동력 반도체 등 e-GMP의 PE, 즉 전동 파워트레인의 주요 기술들이 e-GMP.S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고 e-GMP의 스케이드보드 플랫폼 레이아웃을 유지한 부분도 다양한 캐빈 모듈을 장착하고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 중요한 PBV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명한 선택이다. 여기에 모터와 배터리 팩 등 핵심 부품들을 표준 모듈화 하는 IMA(Integrated Modular Architecture)의 개념이 적용되면서 PBV의 핵심 경쟁력인 주문자 스펙 생산의 유연성이 확보된 것이 주요 기술적 포인트. 그리고 스케이드보드 플랫폼이 유지되면서 배터리 팩의 개념도 유지되는데 하지만 모듈 단계를 삭제한 CTP, 즉 셀-투-팩 개념이 적용되면서 배터리 팩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효율성은 현대차그룹 최초로 적용하였다. 이것은 스케이드보드 플랫폼의 평면을 활용하는 PBV로서의 장점은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배터리 팩 주변의 충돌 안전 대책은 더욱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는 설계 효율성도 챙기는 현실적 진화다. 복잡한 차체에 최대한 많은 배터리 셀을 탑재할 수 있는 CTB, 즉 셀-투-바디 수준까지의 복잡성을 굳이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형상적 특징을 고려한 것.

그런데 기술적 측면을 너머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PV5의 매우 경쟁력이 우수한 가격 포지셔닝이다. PV5 카고 모델의 경우 유럽 시장에서의 시작 가격은 3만 유로 이하라고 한다. 경쟁 관계에 있는 폭스바겐 ID.버즈와 비교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 앞서 말했던 CTP를 최신 트렌드인 CTB까지 발전시키지 않는 ‘적정기술’의 개념 역시 가격 경쟁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다.

사실 최초의 PBV라면 장르의 개척자로서 어쩔 수 없는 초기 진입 비용을 떠올릴 수 있다.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논리적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 하지만 PV5는 매우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사실 여기에는 e-GMP.S 플랫폼을 포함한 PV5의 여러 부분들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처음 적용한 것들이 의외로 적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 ST1은 PV5가 가려는 길을 앞서 가 본 파일럿 프로덕트의 향기가 농후하다. 예를 들어 앞바귀 굴림 기반의 카고 밴과 샤시 캡 개념을 최초로 적용한 순수 전기차이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AVN을 통하여 서드파티 앱을 쉽게 탑재할 수 있는 오픈 생태계를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를 추측하게 하는 것은 400볼트 아키텍처의 적용이다. 기아는 EV3를 출시하면서 400볼트 아키텍처와 앞바퀴 굴림 방식의 전용 전기차 플랫폼에도 e-GMP라는 브랜드를 사용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PV5의 e-GMP.S에 적용 가능한 차세대 전륜 구동형 전기 파워트레인의 설계 개념을 부분적으로라도 구현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공간을 덜 차지하는 thin HVAC가 그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 PV5의 e-GMP.S의 가장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가 앞차축 모듈에 통합된 PE, 즉 전기 파워트레인의 패키징을 새롭게 최적화하여 크래시패드와 운전석의 위치를 앞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이를 통하여 PBV인 PV5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간의 확보와 자유도를 보장할 수 있었다.

이 이외에도 라스트마일 모빌리티 및 라이드 헤일링과 같은 상용 모빌리티 시장용 제품이라는 특성에 알맞게 TOC, 즉 생애주기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모듈로 부품을 교체하는 모듈형 브라켓 설계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하면 수리 시간을 단축하여 운휴에 따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듈로 교체하면 부품 교환 비용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수리용 재활용 모듈의 원활한 공급 등을 통하여 부품 단가를 최적화할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 글 첫부분에 말했듯이 PBV의 생명은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기아는 비스포크, 즉 주문 제작 방식을 인 하우스 차원에서도 지원하려고 한다. 이미 유럽에서는 전동화 상용차 시장에서는 제품과 충전 솔루션 등 최적의 패키지 상품을 제공하기 위한 B2B 고객 컨설팅 서비스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 부문에서는 유럽 상용차 브랜드에 비하여 현대차그룹은 다소 뒤처져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PV5를 통한 PBV 시장이 현대차그룹이 유럽 상용차 시장에서 주요 경쟁자로 우뚝 서는 중요한 계기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에 PV5와 함께 공개된 EV4 해치백, EV2 컨셉트 모델 등을 보면서 ‘씨드’ 시리즈로 과거 기아 브랜드가 유럽에서 현대차보다 앞서 나가던 시절이 떠오른다. 유럽에 견고한 기반을 갖고 있던 기아 브랜드가 다시 한 번 일어서기를 바란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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