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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맨
2024-05-29 17:00
또렷한 포지셔닝이 필요하다, 기아 EV3
기아 EV3가 공개되었다. EV3의 임무는 또렷하다. 그것은 ‘전기차 대중화의 시작’이다. 따라서, EV3는 그것을 또렷하게 말해야 한다.
특히 제원과 가격표가 그래야 한다. 가격과 제원은 소비자들이 제품의 용도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이기 때문이다.
공개 행사에서 기아는 EV3의 글로벌 판매 목표가 연 20만대라고 말했다. 이것은 작년 기아 브랜드가 가장 많이 판매한 순수 전기차 모델인 EV6의 글로벌 판매량의 두 배 이상이다. 기아 브랜드가 EV3에게 순수 전기차의 대중화라는 임무를 맡겼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공교롭게도 EV3가 속한 B SUV EV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아직 없다. 가장 근접한 베스트셀러가 BYD 아토3 / 위안 플러스 (C SUV, 41만대)와 폭스바겐 ID.4 (C SUV, 19만대)와 폭스바겐 ID.3 (C 해치백, 14만대)일 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공교롭게도 BYD가 지난 3월 정확하게 EV3와 같은 B SUV EV 세그먼트 모델인 ‘위안 업(Yuan Up)’을 공개하였다.
즉, EV3는 현재 C 세그먼트, 즉 국내 기준으로 준중형 시장까지만 확대된 순수 전기차 시장을 소형 SUV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확대시키는 첫 모델 중의 하나라는 뜻이다.
BYD 위안 업은 일단 중국 내수 시장에 출시되었다. 그리고 중국 내수 시장은 순수 전기차 시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성숙된 곳이다. 홍광 미니같은 초소형 전기차가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메르세데스 G 바겐 EQ 테크놀로지가 글로벌 프리미어를 할 정도로 최상위 전기차까지 순수 전기차 시장이 그 폭과 다양성에서 가장 성숙된 곳이다.
그런데 BYD 위안 업의 제원이 EV3와 내수 전기차 시장에 시사하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외형상 제원은 EV3와 매우 비슷하다. 차체 길이는 EV3와 위안 업이 각각 4.3 대 4.31미터, 폭은 1.85 대 1.83미터로 거의 같다. 휠 베이스는 EV3가 2.68미터로 2.62미터인 위안 업보다 약간 긴 반면 높이에서는 1.675미터인 위안 업이 1.56미터인 EV3보다 높다. 실내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에서 약간 차이가 있을 뿐 외형 제원은 거의 같다는 뜻이다.
그러나, 파워트레인에서는 또렷한 차이가 있다. BYD 위안 업은 최고 출력 70kWh - 배터 용량 32kWh의 엔트리급 조합과 130kW – 45.1kWh의 상위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에 비하여 EV3는 최고 출력 150kW와 58.3kWh 및 81.5 kWh 배터리를 사용한다. 150kW의 최고 출력은 BYD의 경우는 한 세그먼트 위인 준중형 크로스오버 SUV인 아토 3에 해당되는 출력이다. 아토 3의 배터리 용량은 50~60kWh다. 참고로 BYD 모델들의 중국내 모델들은 모두 LFP 배터리를 사용하고 내수용 EV3는 최신 4세대 삼원계 배터리를 사용한다.
요컨대 EV3의 파워트레인과 배터리는 세그먼트의 관점에서는 오버 스펙에 가깝다. 물론 중국보다 높은 우리 나라 고객의 구매력과 신기술에 대한 감수성을 감안하면 그 정도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BYD 위안 업의 중국 내 가격이 2천만원 이하이며 ‘사회 초년생을 위한 첫번째 차’라는 슬로건을 고려하면 다시 한 번 EV3, 특히 롱 레인지 배터리의 스펙을 바라보게 된다. 확실히 오버 스펙이다.
EV3가 공개된 직후 주변의 엇갈리는 반응을 보면 EV3의 초기 스펙이 시장에 주는 이미지가 또렷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도자료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롱 레인지 모델의 항속거리 501km’다. 이 부분이 EV3의 국내 시장에서의 용도와 이미지를 다소 혼란스럽게 만드는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현재 기아 전기차 가운데 500km 이상의 항속거리를 보여주는 모델은 동일한 501km를 기록한 EV9 2WD가 유일하다. 이번에 84kWh 배터리를 탑재한 더 뉴 EV6도 500km의 벽을 넘지 못한다.
EV9과 EV3의 포지셔닝은 엄연히 다르다. EV9는 온 가족이 편안하게 여행을 즐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대형 패밀리 크로스오버 SUV다. 하지만 EV3는? 물론 장거리를 가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로 시내 혹은 근교의 생활 환경에서 사용하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모델이다.
따라서 최소한 국내 시장에서의 EV3 롱 레인지는 EV3의 포지셔닝과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단 상위 모델인 니로와 더 나아가 EV6와도 항속거리에서 스펙 충돌이 발생한다. 특히 니로의 경우는 치명적이다. 항속 거리와 배터리 용량 모두에서 니로는 EV3에 비교하는 순간 ‘시대에 뒤떨어진 구형 모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친환경 파워트레인만으로 전체 라인업이 구성된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모델인 니로는 기아 브랜드의 이미지를 끌어올린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비록 내수 시장에서는 이전보다 고전하고 있지만 니로가 설 자리를 어느 정도 보존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EV3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롱 레인지 모델이 실 구매가 3천만원대 중반이면 참 좋겠다’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도 마다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는 3천만원대 초반의 스탠다드 레인지 모델이 EV3에게 훨씬 정확한 포지셔닝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레이 EV와 EV3가 도심형 시티 커뮤터 EV 시장을 본격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 구매가 2천만원대 초 중반의 레이 EV는 경차라는 도심 특화형 폼 팩터와 함께 도심 대기 환경을 개선하는 전기차에게 가장 어울리는 모델이다. 그러나 경차가 갖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이런 고객들에게 EV3 스탠다드 레인지가 레이 EV와 같은 맥락이지만 공간이나 편의성 등 모든 면에서 상위 호환 모델로 존재한다면 도심형 전기차 생태계가 강력하게 완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항속거리에 ‘그래도’ 혹은 ‘기왕이면’이라는 생각이 자리잡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전기차 배터리 용량은 엔진차의 연료 탱크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또는 철제 연료 탱크의 용량을 늘리는 데에는 차체의 공간이 문제일 뿐 원가는 불과 몇 만원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용량을 늘리는 순간 수백만원의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 가격 인상은 소비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다.
즉, 전기차는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해야 한다. 초기 고관여 고객 중심의 시장에서는 추가 지출을 감수라고라도 긴 항속거리, 혹은 고출력을 위한 높은 에너지 밀도를 확보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EV3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하여 태어난 모델이다. 따라서 느슨한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대중 시장 고객층에게는 고민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는가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 소비자들은 이탈할 것이다. 요즘처럼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경우에는 특히 전기차에 대한 추가 지출을 더욱 자제할 것이기도 하다.
즉, EV3는 또렷하게 자신을 소개해야 한다. 드디어 보통 사람인 당신을 위한 전기차가 나왔다고 말이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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