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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1럭셔리, 그리고 그 이상 - 포르쉐 카이엔 페이스리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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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맨
2023-08-23 17:25
럭셔리, 그리고 그 이상 포르쉐 카이엔 페이스리프트
카이엔은 포르쉐를 한 번 살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이상이다.
고작 페이스리프트 모델 하나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맞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분명한 기술적으로는 발전의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지향점과 전략적 목표의 한계가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번 포르쉐 카이엔 페이스리프트 모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럭셔리였다. 포르쉐는, 그리고 포르쉐의 모델들은 이미 럭셔리 시장에 있지 않냐고? 맞기는 하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어보시기 바란다.
먼저 카이엔의 태생적 임무를 역사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가 되자 포르쉐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였다. 모델 라인업이 거의 붕괴된 것이다. 엔트리 라인이었던 944는 후계인 968의 짧은 생애를 끝으로 1995년에 단종되었다. 그리고 어퍼 클래스 GT 모델이었던 928 역시 같은 해에 사라졌다. 남은 것은 포르쉐의 심장 911 한 모델 뿐이었다. 그러나 911 역시 엄격해지는 배출가스 규제, 그리고 빠르게 발전하는 경쟁자들과의 경쟁을 상대하기에는 공냉 RR 레이아웃으로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포르쉐 브랜드 로열티의 문제였다. 물론 911은 로열티가 매우 강한 모델의 대명사다. 하지만 911로 직접 포르쉐에 진입하기에는 높은 가격이나 까다로운 조종 특성 등 문턱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911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즉, 용도에 따라, 혹은 고객의 성향에 따라 다른 포르쉐 모델을 선택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즉, 한정된 숫자의 매우 충성도가 높은 고객들과는 오랜 세월을 - 여러 대의 911을 판매하며 – 보낼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대적으로 보편적인 프리미엄 시장의 고객들에게는 포르쉐는 한 때 스쳐지나가는 브랜드, 혹은 여러 대의 소유 차량 가운데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렵다. 즉, 포르쉐 브랜드는 성장 잠재력에 한계를 갖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미 포르쉐는 심각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 포르쉐 회장이었던 벤델린 비더킹은 세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나가 새로운 엔트리 모델인 박스터, 두번째가 911의 996을 통한 수냉화와 플랫폼 , 그리고 마지막이 ‘프로젝트 콜로라도’, 즉 카이엔이었다. (맞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려고 했다’는 포르쉐의 폭스바겐 인수를 추진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만큼 비더킹 회장은 포르쉐의 경영 혁신에 철저히 올 인했던 사람이었다.)
전자 두 가지는 기왕의 라인업의 리프레쉬 혹은 현대화라고 한다면, 카이엔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포르쉐 마니아들이 포르쉐가 SUV인 카이엔을 만든다는 것은 ‘배신’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포르쉐의 대답도 유명했다. ‘카이엔이 벌어들은 돈으로 여러분이 사랑하는 911을 만듭니다.’
오늘날의 포르쉐는 카이엔에게 커다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등장했던 카이엔이 회사의 규모와 경쟁력을 이끌었고 덕분에 포르쉐는 충분한 연구 개발비를 지출하면서 지금까지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이며 레전드 모델인 911을 최고의 성능으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이었다. 2022년 약 31만대를 판매한 포르쉐 브랜드의 모델 라인업 가운데에서 카이엔은 삼분의 일인 거의 십만대가 판매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여전히 캐시 카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넘고 있다고 한다.
자, 처음으로 돌아오자. 왜 카이엔 페이스리프트의 전략적 목표를 ‘럭셔리’라고 콕 짚어서 말한 것일까? 이것을 아주 단편적으로 증명하는 기술적 진화가 이번 페이스리프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1인치 커진 타이어 지름과 새로운 서스펜션이다.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다. 아무리 페이스리프트라고 하더라도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모델의 타이어 지름을 키운다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왜냐 하면 타이어 지름이 커진다는 것은 휠과 타이어, 즉 바퀴 전체의 무게가 늘어난다는 뜻이고 이것은 현가 하 질량(unsprung mass)의 증가를 뜻한다. 현가 하 질량의 증가는 서스펜션의 민첩성을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요소다. 즉, 스포츠 브랜드인 포르쉐에게는 매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포르쉐는 무거워진 바퀴를 잘 다루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서스펜션을 장착하였다. 그것은 2 챔버 에어 스프링과 2 밸브 전자 제어 쇼크 업소버의 적용이다. 자세한 기술적인 설명은 생각하겠지만 좋은 승차감부터 예리한 조종 성능까지의 적응 범위를 확장하면서도 내구성과 신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선택지였다.
하지만 새로운 서스펜션이 무거워진 큰 바퀴를 사용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바퀴의 질량 증가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잘 해결했다는 대답만 할 뿐이다. 즉, 무거워질 줄 알면서도, 그래서 새로운 서스펜션으로 대응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지름이 커진 바퀴를 선택한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승차감이다.
차체의 무게를 받아내는 것은 타이어 안의 공기, 정확하게는 공기의 질량이다. 따라서 카이엔처럼 무거운 SUV는 더 많은 공기가 차체를 떠받쳐야 한다. 그런데 스포츠 성향이 높은 모델일 수록 더 큰 지름의 휠과 낮은 편평률의 타이어를 사용하게 된다. 즉, 타이어 안의 용적이 작아진다. 따라서 필요한 질량의 공기를 타이어 안에 넣기 위해 더 높은 타이어 공기압이 필요하게 된다.
높은 공기압은 승차감을 악화시킨다. 카이엔 페이스리프트는 타이어 내부 용적을 더 확보하여 공기압을 낮춘 것이다. 즉, 더 좋은 승차감을 위한 근본적인 변경을 선택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라도 낮은 공기압의 타이어를 승차감에서는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내가 카이엔이 럭셔리를 지향한다고 해석하는 이유이다. 카이엔은 이미 스포츠성에서 SUV의 경지를 넘어선 모델이다. 포르쉐 브랜드의 스포츠 이미지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카이엔의 그런 이미지는 이미 20년의 세월을 통하여 완벽하게 구축되었다. 또한 이번 세대에 등장한 카이엔 쿠페 GT는 스포츠성의 외연을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더 이상의 스포츠성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카이엔은 초대 모델이 ‘포르쉐는 스포츠카’라는 경계를 허물고 회사를 위기에서 구해냈듯, 이번 3세대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또 한번의 외연 확장을 노리는 것이다. 그것은 보다 넓은 프리미엄 시장을 향한 럭셔리 코드의 강화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작년 9월 말 포르쉐는 기업을 공개하였다. 즉, 주식 시장에 상장된 것이다. 이제는 주주들에게 기업의 미래 전망을 더욱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미 포르쉐는 폭스바겐 그룹의 미래 엔지니어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이전에는 자신의 생존과 성장을 위하여 자기들이 잘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거대 그룹의 여러 브랜드들의 미래도 책임져야 하는 훨씬 무거운 어깨, 즉 막대한 투자를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카이엔 페이스리프트 공개 행사장의 프레젠테이션이 보여준 미래 전동화 계획, 즉 2025년에는 카이엔 전기차가 출시될 것이고 2030년에는 포르쉐 전체 판매량의 80%가 전동화 모델일 것이라는 말은 중요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안락한 럭셔리이기도 합니다’라는 카이엔 페이스리프트의 ‘1인치 커진 바퀴’가 던진 메시지가 더 강렬한 IR, 즉 투자자 대상 메시지로 들렸다. 시장의 외연을 넓힌다는 것도 강렬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보통 IR이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예상 내지는 계획이라면 포르쉐가 카이엔 페이스리프트를 통하여 전달한 메시지는 ‘이미 완성했습니다’였기 때문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다. 포르쉐는 하겠다는 말보다 이미 하고 있었다.
글 / 나윤석 (자동차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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